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그가 나를 몰라주는 것을 안타까워 한다.
그리고 그 기다림이 실패하면,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것이 더 행복하다... 라는 자기 만족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가?
혹시나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데도, 인연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있지 않을까?
주변에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그쪽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바라는 사람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그 사람을 원망하겠지.
왜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냐고...
왜 나를 몰라주냐고...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나를 원망하며, 자신을 쳐다봐 달라고 울부짖겠지.
그 역시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을 외면하며,
또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 역시,
또, 또, 그 역시 다른 누군가에...
인간의 운명이, 또는 인간의 감정이
내가 당신을 좋아하면, 당신도 나를 좋아하고
1이 2를 좋아하면, 2도 1을 좋아하고
A가 B를 좋아하면, B도 A를 좋아하는....
이런 식으로 수학 같지 않아서 분명히 재미는 있을 것이다.
수학 좋아하는 사람은 없잖아, 안 그래?
하지만, 내가 그 안에서 주인공이 되면 참으로 답답하다.
차라리 수학처럼 정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당신에게 닿는 길을 굳이 돌고 돌아가는 것까진 좋다.
그래,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그러나...
당신에게 닿는 길을 돌고 돌아 머나먼 길을 가고 있다 믿었는데,
그 길이 결국 그대에게 닿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니...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의 끝이 그대에게 닿을지 닿지 않을지 모르고,
거기에 닿지 않을 것 같아서 포기했더니,
그 때문에 닿지 않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닿지 않을 운명이었는지
그것조차 모르기에...
답답하다.
...
...
그리고 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 답답함을 안겨준 적이 있겠지.
어쩌면, 지금 그러고 있을지도.
내가 그를 책망할 자격...
음, 자격이라...?
그래, 사람 감정이 향하는 것에 굳이 자격... 이라는 말까지 쓸 필요는 없겠지.
내가 그를 그리워하면서, 그를 원망하려는 행동은 하지말자.
나도 똑같을 수 있잖아.
심지어 나를 그리워한다고, 직접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원망하지 말아야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사랑을 주니까 행복한 것이고,
그게 실패로 끝났을 때는 사랑을 받는 것이 행복한 것이다.
라는 핑계를 대지 말자는 것이다.
죽을 무렵에나 그렇게 하든가.
어차피 끝날 거, 그 시점에서야 남을 원망하면 어때?
내가 사라지면 바뀌는 것도 없을 테니.
아니, 바뀌어도 아무 의미없을 테니.
물론, 죽을 무렵에 하는 원망조차 그 시점까지 그를 그리워했어야 원망이라도 하는 게 맞겠지만,
방금 말했듯이 뭐 어때?
곧 죽을 사람이 원망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고, 어차피 끝날 세상,
그 순간이라도 내 멋대로 남을 원망하다 죽으면 뭐 어떠냐는 것이지.
과연 나는, 죽을 때까지 그를 그리워할까?
그조차 아니면, 죽는 순간에라도 그를 그리워할까?
그럴 수 있을까?
죽는 순간에 그를 원망하든, 그리워하든...
그때까지 그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을까?
단 한 번만이라도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설마, 죽는 순간에도 그대에 대한 원망이니, 그리움보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이라는 후회를 하진 않으려나?
최소한 그렇게 되진 말아야지.
차라리 내 인생을 헛되이 살았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후회를 하면 모를까
그에 대한 못다한 그리움을 후회하는 건 참 책임감도 없고, 슬프고, 우스운 일이겠지.
그냥 원망하며 스러지자.
죽기 전까지 그를 원망하자.
죽기 전에 그를 원망하자.
죽기 전 마지막 순간, 온 힘을 다해 그를 떠올리자.
그러니까 그 순간에 원망이라도 하려면 잊지 말고, 기억하자.
그대를.
그대를 내 마음 속에 품었다는 사실을.
아직은 그대를 내 마음 속에 담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든, 어느 때든, 어느 순간에든,
나 아직도 그대를 마음 속에 두고 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